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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즘은 왜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먼저 계산하게 될까

아무 일도 없는데, 갑자기 계산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.

 

당장 무슨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, 누가 재촉한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몇 걸음 앞을 가 있다. 이 선택을 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, 지금 이 상태가 계속되면 나중에는 뭐가 달라질지. 예전 같았으면 굳이 하지 않았을 생각인데, 요즘은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부터 떠오른다.

 

 

이상한 건, 이런 계산이 꼭 불안한 상황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. 평범한 하루, 특별한 사건도 없는 날에도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친다. 아직 멀었다고 여겼던 문제들, 언젠가는 고민해야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넘겨두던 일들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온다. 괜히 미리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, 한편으로는 이제는 안 그럴 수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.

 

주변을 보면 나만 이런 건 아닌 것 같다. 다들 비슷하다. 겉으로는 “아직 괜찮다”고 말하면서도, 속으로는 계산을 끝내놓은 사람들처럼 보인다. 노후 이야기, 집 이야기, 계약 이야기, 책임에 대한 이야기들이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오간다. 누가 먼저 꺼내지 않아도, 언젠가 화제는 그쪽으로 흐른다.

 

 

왜 이렇게 됐을까.
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. 이제는 선택 하나가 가볍게 끝나지 않는 시기라는 걸, 다들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. 예전에는 잘 몰라도 지나갈 수 있었던 일들이, 지금은 한 번 놓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걸 너무 자주 본다. 직접 겪지 않았어도,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미 충분히 학습해버렸다.

 

그래서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먼저 계산한다. 준비를 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, 뒤늦게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다. 이 계산은 계획이라기보다 방어에 가깝다. 혹시라도 내가 너무 무심한 건 아닐까, 나만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먼저 작동한다.

 

문제는 이 계산이 계속되면 피로해진다는 점이다.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보려고 하면 끝이 없다.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기준으로 오늘의 기분이 좌우되고, 괜히 지금의 선택이 다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. 그래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. 내가 너무 겁이 많아진 건지, 아니면 다들 이렇게 사는 건지.

 

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.
이건 겁이 많아진 게 아니라, 책임의 무게를 아는 단계로 들어온 거다. 예전보다 약해진 게 아니라, 예전보다 많은 걸 고려해야 하는 위치에 와 있는 거다.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, 지금을 대충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.

 

다만, 이 계산을 언제까지 붙잡고 있을지는 내가 정해야 한다. 모든 걸 미리 정리해두려고 하면, 정작 오늘을 놓치게 된다. 아직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오늘의 문제로 끌어당길 필요는 없다. 생각해봤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 번은 대비한 셈이다.

 

요즘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면, 이상한 게 아니다. 다들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. 각자의 속도는 다르지만, 비슷한 방향으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을 뿐이다.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먼저 계산하게 되는 요즘은, 불안해서라기보다 이제는 그냥 그렇게 살게 된 시점일지도 모른다.

 

 

오늘은 계산을 조금 내려놔도 된다.
모든 답을 지금 다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. 생각은 충분히 했고, 판단은 나중에 해도 된다.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은, 정말로 아직 오지 않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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